소녀는 누군가 이 재앙을 막아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자연 정령이 가득했던 카마실브를 벗어나서는 온전히 힘을 발휘할 수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소녀는 다시금 그 꿈에서 느꼈던 공포스러운 존재의 등장을 떠올렸다. 이전보다 훨씬, 강력한 힘의 원천을 손에 넣어야만 했다.

소녀의 의견에 반대하는 이들도 많았다. 이 땅의 운명을 걸고 도박을 하려 한다는 비난도 잇따랐다. 자연 정령의 힘을 사용하는 기존의 방식을 유지하면서, 힘을 증폭시키고 더 정교하게 제어할 수 있는 새로운 기술을 찾아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렸다. 언제 닥쳐올지 모르는 재앙을 앞두고 그들은 또 다른 분열을 겪고 있었다.

어떻게 알았는지, 가시나무의 땅 오딜리타에서 몇 명의 베디르가 소녀를 찾아왔다. 이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강력한 힘을 얻었다던 아히브의 일원이었다. 소문대로 아히브는 이전과 완전 다른 모습이 되어 있었다. 한 때 서로 자매라 불렀던 존재로는 보이지 않을 만큼.

아히브들은 자신의 고향을 뒤덮었던, 검은 정령의 힘을 받아들인 뒤였다. 그들은 검은 정령의 기운을 두고 '마르지 않는 샘'이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그들은 어딘가 이상했다. 스스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누군가의 명령을 받고 움직이는 듯했다.

검은 정령의 힘은 다크나이트, 정확히는 베디르와 많이 닮아 있었다. 그들이 정령을 지배하고 그 힘을 빼앗아 사용하듯, 검은 정령은 그들의 정신을 갉아먹고 조종하려 했다. 이내 그 힘에 지배당해 날뛰는 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힘을 주체하지 못하고 고통에 몸부림치다 광인이 되거나 보이는 것들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목숨을 건진 이들은 곧 그들을 찾아온 아히브와 같이 기이한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눈은 살의와 욕망으로 타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