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비극에 잊혀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을 어느 평범한 사람. 사람들의 이야기에도, 기록에도 그 어느 곳에도 남지 못하고 모래알처럼 사라진 평범한 사람.

웃고 때로는 우는 화려한 연극 중 누군가 늦게 들어와 "아,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자리 좀 앉겠습니다." 마치 지나가던 행인과 같은 사람의 운명에도 우리는 관심 가질 수 있는가?

아마도 훗날 사람들이 그녀에 대해 기억하는 건 죽여야 할 괴물. 아이를 잡아먹으려고 했던 괴물. 훗날 광명의 형제회가 그녀에 대해 기록하는 건 아까운 괴물. 아무런 뒤끝도 없이 편하게 가질 수 있었던 병기.

괴물의 본능에 잠식되어가는 딜라아르 그녀의 기억 속 그녀는 에페리아에서 공예방을 운영했던 평범한 한 여인. 검은별의 재앙에 사랑하는 남자를 잃고 역병에 죽어가며 배 속의 아이마저 잃을 뻔했던 딜라아르. 아이를 살리기 위해 광명의 의식에 스스로 제물이 된 그녀. 온갖 실험에 쓰이다 제 손으로 아이를 죽일 뻔하고 달아난 괴물. 누가 이 괴물의 아무것도 아니었던 과거를 한 줄 기록해 줄 수 있을까?

-어느 모험가의 일지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