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명을 가지고 태어난 자.

유난히도 새하얀 달이 카마실비아를 비추던 날, 젊은 루트라곤은 여신의 신단수 앞에 서 있었다. 무엇을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달빛 어린 바람을 맞고 있었다.
수많은 카마실브 이파리 중 하나에 자신이 찾는 답이 적혀있지 않을까 찾는 눈치였다. 그는 지나친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는 일이었으며 생각만으로도 숨이 턱 막히는 느낌이었다.

뿌리를 수호하라는 숙명을 짊어지고 그 답을 찾기 위해 지상으로 올라왔지만, 태어나 뿌리를 지키는 것이 전부였던 그에게 지상의 모든 것들은 낯설 뿐이었다.
게다가, 자신들을 지하에 가두어 놓으려고 했던 것이 자신의 동족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혼란스러움을 넘어 태어나 처음으로 분노를 느꼈다.
생각에 잠겨 답을 찾는 동안 부스럭하는 소리와 인기척이 느껴졌다. 검은 연기와 함께 사라졌지만, 그는 똑똑히 알 수 있었다. 자신과 지하의 루트라곤들을 막으려고 했던 자신의 남매, 베디르였다.

루트라곤은 검은 연기를 추적하며 숲을 내달렸다. 따라잡으려 노력했지만 쉽게 거리가 좁혀지지 않았다. 숨을 고르며 강한 힘으로 활시위를 당겼다. 화살은 굉음과 함께 튕겨 나가며 공간을 찢고 날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