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청년은 노인에게 승리를 거두었다. 승리를 거둔 청년은 그 자리에서 삼보 구배의 예를 갖추고 노인을 스승으로 모셨다. 노인 또한, 커다란 성취를 이룬 청년을 격려하며, 그를 제자로 인정했다.

그러나 이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노인의 기력이 빠르게 쇠하더니, 결국 청년은 스승의 주검과 마주 보았다. 오랜만에 사람 사이의 유대를 찾은 청년에게 스승의 죽음은 커다란 충격이었다. 충격으로 멍해진 청년의 눈에 스승의 머리맡에 피로 얼룩진 ‘무신 비급’과 유지가 들어왔다.

언월도 하나로 서련방의 정점에 올랐으나, 권력 암투에 밀려 죽었다고 알려진 전설의 고수, 무신 해암. 그리고 자신을 낳고 세상에서 자취를 감췄던 아버지. 초대 무신 해암을 기리기 위해 열렸던 무신제. 그제야 청년은 노인의 따뜻했던 눈을 기억하며 오열했다.

해암의 장례를 치른 청년은 서련방에 돌아가 아버지의 무기이자 왕국의 기보, 서련방 정점의 상징 ‘무신도’를 손에 넣어 해암의 무덤에 바쳤다. 권력의 정점에 오른 그는 왕국에 들끓는 간신들의 권모술수에 휘말리며 가까스로 목숨만 부지하고, 도 한 자루와 무신 비급만을 품은 채 서방으로 떠나는 배에 몸을 싣게 되었다.